무한도전과 품위
난 요즘 최신 무한도전보다는 케이블에서 해주는 무한도전 비긴즈를 더 재밌게 보고 있다. 요즘 무한도전이 품위가 떨어져서가 아니고, 왠지 있는 집 어르신 머리에 발라진 개기름마냥 반지르르하게 질척거리는 느낌이 들어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.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나와서 고군분투하는 재미는 없어지고, 착한 척하는 부잣집 막내아들의 철없는 자기과시 같은 어색함만 남은 듯 하다. 물론 방통심의위의 촌스러움에는 비교할 방뻡조차 없지만, 무한도전에서도 뭐랄까, 짧은 난닝구로 간신히 뱃살을 감추고 있는 듯한 그런 안타까움이 느껴진다.
존재 자체가 촌스러우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얘기하는 품위는 단어 몇 개로 금지곡을 만드는, 역시 존재 자체가 안습인 청소년보호위원회 수준의 촌스런 잣대를 쓴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이 블로그의 품위도 있고하니 굳이 언급을 할 이유는 없고, 다만, 무한도전은 이번 일과 관계없이 뭔가 과감한 결단을 할 필요가 있다는, 이미 실현되기 매우 어려워 보이는 바램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.
욕심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잘 가리지 않는 자본이 본격적으로 끼어들면 무엇이든 어쩔 수 없이 촌스러워 질 수 밖에 없다는 거. 뉴욕의 소호가 그랬듯이 무한도전도 이제 그 어떤 과정의 맨 끝자락에 다다른 느낌이다.
존재 자체가 촌스러우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얘기하는 품위는 단어 몇 개로 금지곡을 만드는, 역시 존재 자체가 안습인 청소년보호위원회 수준의 촌스런 잣대를 쓴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이 블로그의 품위도 있고하니 굳이 언급을 할 이유는 없고, 다만, 무한도전은 이번 일과 관계없이 뭔가 과감한 결단을 할 필요가 있다는, 이미 실현되기 매우 어려워 보이는 바램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.
욕심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잘 가리지 않는 자본이 본격적으로 끼어들면 무엇이든 어쩔 수 없이 촌스러워 질 수 밖에 없다는 거. 뉴욕의 소호가 그랬듯이 무한도전도 이제 그 어떤 과정의 맨 끝자락에 다다른 느낌이다.
